우리가 되는 그날이 오기를 -『단속사회』를 읽고

저자가 말하는 ‘단속사회’란, 단속(斷續)과 또 다른 단속(團束)의 합성어를 의미한다. 즉, 현대인들이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고 외면하며 이에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단속(斷續)과 자기를 단속(團束)하며 동일성에만 머무르며 자기 삶의 연속성조차 끊어져 버린 상태를 말한다.

[지금 여기 가까이] ㉑ 우리 사이의 배치가 강렬해질 때

주체성은 ‘뜻과 지혜와 아이디어와 실천력을 가진 우리 중 어느 누군가’이며, 우리 삶의 대부분이 자본주의적 '책임주체'가 아닌 이러한 '주체성'에 의해 이루어지곤 한다. 특히 공동체에서 일을 진행하다 보면, 1부터 3까지는 내가 한 일이고, 4부터 7까지는 네가 한 일이라고 칼로 자르듯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일들이 대부분이다. 공동체의 배치와 관계망에서 유통되는 수많은 발언과 행동의 에너지와 흐름이 어떤 특이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공동체에서의 정동과 사랑, 돌봄의 따뜻함, 부드러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함, 강렬한 대화 등이 '주체성 생산'을 해내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뉴스레터 100호 특집] 편집위pick #커먼즈

《생태적 지혜》에서 주목하고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커먼즈 이다. 오늘날 커먼즈에 대한 논의는 공유에 대한 혁신적인 사유를 지향하는 모든 부위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너와 나 사이에서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 커먼즈가 생성되는 과정은 공동체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개인은 멈추지 못한다 – 『리추얼의 종말』을 읽고

『리추얼의 종말』의 저자 한병철은 ‘현대 사회는 리추얼과 공동체가 소멸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진정성이라는 투명한 관계보다 반복의 의례, 즉 리추얼을 통해 삶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리추얼의 재발견을 제안한다. 이 글의 필자는 한병철과 달리 가족과 친구와 같은 주변의 인간관계를 통해 리추얼을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여전히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 현재에 적합한 새로운 리추얼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알고 보면 모두가 억울하다 -이야기 ‘바리공주’를 읽으며 더 나은 공동체를 생각하기

평생을 완벽하게 행복만 누리면서 살아서 여한이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삶은 지극히 드물 것이다, 여한은 그저 개인의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쌓이는 것이라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서 얽히고 쌓여가는 것이기에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여한 없는 삶 아니 여한 없는 죽음에 근접한 더 나은 공동체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야기 ‘바리공주’를 읽으며 그 조건을 생각해 봤다.

[오로빌 이야기] ③ 개미집에서 살게 된 거죠

전세계 80여개 국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남인도 생태공동체 마을 오로빌에서 본격적으로 뉴커머 생활이 시작되었다. 게스트하우스 생활을 정리하고 운 좋게 한 집에서 하우스시팅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비인간 이웃들을 통해 공동체의 삶이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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