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신화나 종교 경전에서만 찾을 수 있을까. 영웅이란 어떤 존재일까? 영웅의 정의를 재해석하며 영웅성을 먼 곳의 위대한 인물에서 찾는 대신, 일상 속에서 헌신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발견해보자고 제안한다. 캠벨이 정의한 영웅은 자신을 넘어 타인과 더 높은 가치를 위해 헌신하며 삶의 연결성을 회복하려는 존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데올로기를 넘어 서로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며 새로운 관계와 연결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시대의 영웅이지 않을까.
조용한 공원에 앉아 계절에 나에게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3월은 말한다. 그리고, 봄이라고.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는 산업농 시스템이 초래한 ‘죽음의 경제 모델’을 비판하며, 사회적 책임에 대해 묻고 있다. 기업들의 이윤 추구가 인간과 자연에 미친 피해를 고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작은 실천과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큰아들 정식이 스물일곱에 혼인을 한다. 혼인 이후 보성댁의 첫 생일이 돌아오자 큰며느리가 멀리 부산에서 일부러 찾아와 보성댁의 생일상을 차린다. 생전 처음 생일을 챙기고 생일상을 받아본 보성댁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다. 모처럼 걸게 차린 엄마의 생일상에서 게걸스럽게 먹어대던 미자는 배탈이 나 버린다.
동인(東人)이라는 말이 있다. 최치원의 글 속에 이 말이 보인다. 이 말은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지리적으로 한쪽 주변인 동쪽에 사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최치원은 이 말을 사용하여 그 사람들의 자부심을 북돋으려 한 듯하다. 그와 같은 시도의 논리적 얼개를 알아본다.
비폭력 저항은 단순한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효과적인 전략임을 강조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상황에서도, 무장 저항보다 비무장 투쟁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주장하며, 폭력의 순환을 끊기 위한 급진적인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군사주의와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저항과 연대를 통해, 보다 지속가능한 평화의 가능성을 탐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강을 ‘현재에서 더 나아가야 하는 어떤 것’으로 지나치게 이상화할 때, 건강을 추구하는 것은 성장주의의 한 형태가 된다. 이는 국가가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건강한 노동력을 확보하고자 했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걷기는 세계와 세계를 연결하고 세계를 드러내는 본질적인 방법이 되며 새로운 발명을 선사하기도 한다. 지역을 걸으며 관찰하는 프로그램(노플랜워크숍)이나 거리와 관계맺는 익숙한 방식을 바꿔 새로운 영감을 주는 스트리트위즈덤을 통해 몸의 감각을 깨워보는 것은 어떨까?
지질학적으로 매우 희귀한 지형일 뿐만 아니라,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송악산. 그 생태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부터 시작된 개발사업에 끊임없이 몸살을 앓아왔으며, 2019년 ‘송악산뉴오션타운’이 환경영향평가 심의까지 통과되어 개발사업을 착수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발 벗고 나선 ‘송악산 개발 반대대책위’가 개발 부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벌인 활동을 소개하고, 2025년 또 다시 위기에 빠진 송악산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민하고자 한다.
[생활詩] 세신왈츠new
봄을 대하는 자세로, 내 몸 돌보기부터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세신하는 내용을 시로 썼다. 이 시는 요한스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를 들으며 읽어 주시기 바란다.
제프 구델은 이 책을 통해 ‘폭염’을 ‘눈에 보이지 않는 살인자’라고 정의하며, 이제라도 우리가 폭염의 위험성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경고한다. 더위는 이제 단순히 환경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라는 깊은 균열을 만들기에 절대로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의 삶을 생존으로 일축시킨다. 생존 경쟁이 되어 버린 인간의 삶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권리를 잃고 말았다. 자연으로부터 소외되기를 자처한 현대 사회는 결국 서로의 생존을 쥐고 갑질하는 사회로 전락했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우리는 과연 삶의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일단 몇 년 몇 년 넘다 보면 뻣뻣한 몸에 열감이 돌고 조금 더 지속하면 마음이 리듬감을 얻는다. 사람도 점과 선과 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독한 개별과 개별을 잇고 손아귀에 다섯을 꼭 쥐어본다.
사랑은 합일이 아니라 차이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는 '되기'의 과정이다. 서로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특이성을 강화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흐름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를 '되기'로 설명하며, 사랑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차이를 낳는 차이의 연속이다. 이를 통해 되기의 철학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