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기술혁신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인류가 과학기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 할 것이라는 비관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논의도 학제간 통섭에 대한 당위나 기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편에 머무르고 있을 뿐인데요. 필요한 일입니다만, 조금 더 깊은 이해와 대응책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 속에, 과학기술과 인문학이 왜 만나야 하고, 어떻게 조율되어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COVID-19 이후] 다가온 탈성장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 COVID-19 이후의 사회재편

COVID-19 이후의 사회는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상황에서 관계의 빈곤이 아니라, 더불어 가난을 통해 사회를 재건하는 결사항전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전환의 전망은 그린뉴딜, 기후금융, 기본소득, 에너지전환 등의 가속주의 전망과 탈성장, 더불어 가난, 살림과 협동의 사회, 순환사회, 적정기술 등의 감속주의 전망이 교차한다. 우리는 전환을 가속하면서도 생활양식을 감속하는 배리(背理)의 원리 속에서 새로운 전환의 에너지를 찾는다.

[역성장으로의 문명의 전환, 생태민주주의와 협동조합의 전략지도] ③제로성장 시기의 생태민주주의

이 글은 바야흐로 저성장, 역성장, 탈성장 국면으로 접어든 협동조합이 어떤 대응과 적응의 지도를 그릴 수 있는지 그 전략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성장을 몰적인 것으로, 저성장을 분자적인 것으로, 제로성장을 원자적인 것으로, 역성장을 양자적인 것으로 보는 초극미세전략의 일부이다. 여기서 몰은 집중성으로, 분자는 유한성으로, 원자는 순환성으로, 양자는 확률성에 대당(對當)된다는 이론적 가추법(abduction)을 적용해 보았다. 이 글은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 주관으로 2019년도에 수행된 연구과제 결과물이며, 원문을 나누어 총 4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미주통신] 지금 여긴, 거기보다 조금 위험해 보입니다

현재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필자는, 최근에 겪은 미국 현지 상황을 개인 체험기 형식으로 정리했다. 그동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상황을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던 미국인들이 최근 달라졌다. 뉴욕의 확진자가 폭증하고 모든 주에 COVID-19가 확산되면서, 거리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마트의 생필품 코너가 텅 비었다. 미국에서의 생활에 점점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최근 한국에 귀국한 유학생 감염자들 문제가 떠오르면서 혹여 귀국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나날이다.

[역성장으로의 문명의 전환, 생태민주주의와 협동조합의 전략지도] ➁저성장 시기의 생태민주주의

이 글은 바야흐로 저성장, 역성장, 탈성장 국면으로 접어든 협동조합이 어떤 대응과 적응의 지도를 그릴 수 있는지 그 전략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성장을 몰적인 것으로, 저성장을 분자적인 것으로, 제로성장을 원자적인 것으로, 역성장을 양자적인 것으로 보는 초극미세전략의 일부이다. 여기서 몰은 집중성으로, 분자는 유한성으로, 원자는 순환성으로, 양자는 확률성에 대당(對當)된다는 이론적 가추법(abduction)을 적용해 보았다. 이 글은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 주관으로 2019년도에 수행된 연구과제 결과물이며, 원문을 나누어 총 4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과학기술과 민주주의] 기술 전환과 시민의 참여➁

2017년 논란이 컸던 탈원전 이슈를 기억하시는지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인해 본격적으로 제기된 이 문제는, 내용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한국 사회에 생경한 의사결정 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른바 ‘숙의민주주의’라고 불리던 것인데요, 큰 틀에서 보면 이 방식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 전환 과정에서, 기술의 역할과 통제 방식에 대한 의사결정의 내용과 형식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2019년 12월 생태적지혜연구소 주최로 실시한 〈기술의 전환, 전환의 기술〉 세미나에서 발표하였던 '과학기술과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여, 기술의 엘리트주의를 극복하고 시민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코로나, 기후위기, 그린뉴딜] ②코로나와 기후위기

생명은 생태계 내 다른 생명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적응하고 공진화하며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서식지 파괴, 공장식 축산, 자유무역으로 일컬어지는 탄소자본주의의 동학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어그러져 자연진화의 질서와 속도를 상회하는 낯설고 날카로운 만남을 갖는다. 이는 빈곤과 불평등, 밀집도, 이동률(거리), 불안과 공포와 같은 사회적 원인으로 증폭되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을 ‘코로나 사태’로 치닫게 한다. 이러한 총체적 원인은 기후위기를 빚어낸 원인과 적확히 동일하며 그럼에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위기는 기후위기의 일환이다. 하지만 양자는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악화하는 양의 되먹임 관계를 가진다. 기후위기는 신종 감염병의 증가‧확산‧증폭을 가져오고, 코로나 사태와 같은 신종 감염병은 사회적 대응력과 지역사회 회복력, 신뢰, 공공성, 민주주의를 위험 수위로 데려다 놓는다. 그럼에 우리에게는 이 난국을 돌파할 전환의 상상력과 설계도가 긴요하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와 사회적 관계

일상화된 혐오와 차별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외부로 공격의 화살을 쏟아 보내며 자신과 다른 이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고 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를 통해서 우리는 무너진 사회적 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이를 계기로 사람 중심의 이해관계사회가,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관계로 새로이 배치되었으면 한다.

[류하의 사유정원]⓶국가 그리고 자율적 공동체

인류는 정착이 시작되고도 4천여 년 이상을 국가 없이 부분적 정착농업, 수렵채취, 화전, 유목 등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자율적 공동체의 삶을 살았다. 자율성은 국가를 비롯한 어떠한 권력도 사람과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생명 그 자체의 내재율이다. 이는 생명이 우주적 신령스러움에 기반하여 탄생하고 소멸하며 지속한다는 우주적 본성에 기초한 것이다. 이에 비해 국가를 비롯한 권력이 지배하는 현대문명은 외재율(外在律)의 문명이며, 이 문명을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과 공동체적 삶은 국가권력을 비롯한 권력에 저항하거나 탈주를 모색하는 탈근대문명이다. 이는 내재율에 기초한 자율성의 문명이며 자각과 배움을 통한 공진화(共進化)의 길이다.

[코로나, 기후위기, 그린뉴딜] ① 코로나 사태, 사회정치경제 지평에서의 위기

[코로나, 기후위기, 그린뉴딜]은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글에서는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과 사회정치경제 전반의 지평에서 위기가 전염‧가중·증폭되어 맞을 국면을 다룬다. 두 번째 글에서는 코로나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초점을 두어 분석하고, 코로나위기와 기후위기가 같은 원인으로 초래되었을 뿐 아니라 양의 되먹임 관계임을 밝힌다. 마지막 글에서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저감과 적응’의 전환책으로 그린뉴딜을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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