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은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불평등의 세대』를 읽고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불평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신자유주의자들은 불평등은 항상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결과라고 가볍게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워킹 푸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열심히 일해도 불평등의 간격은 좁아지기는커녕 점점 커져만 간다. 여기에 사회학자인 저자는 기존의 불평등을 세대 내에서 찾지 않고 세대별 격차에서 찾는다.

“인간의 멸종”, 일상이 되어버린 경고 – 『인간의 종말』을 읽고

지구는 더러워지고 또 더워지고 있고, 인간은 위험해 처했다. 넘쳐나는 경고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대멸종을 경고하는 최전선의 지성들은 경고를 남발하는 양치기 소년이 되었다. 이미 우리 주변엔 많은 경고와 대안들이 있다. 온전히 종이 위에 말이다. 대안을 현실로 바꾸는 건 결국 우리 인간의 몫이다.

멈출 수 없는 탈핵 운동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고

체르노빌도, 후쿠시마도, 핵 발전소 사고는 아직 진행 중이다. 사고로 누출된 방사성 물질들은 지구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더 많은 방사성 물질들이 누출될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재난과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세계를 실재적이지만 추상적인 것으로 파악하기 위한 설계 ; 브라이언 마수미 《가상계》 〈서문〉 독후기

형식논리를 핵심적인 도구로 하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세계를 대체로 ‘예측 가능한 곳’으로 만들고,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모든 것이 예측되고 결국은 관리되는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점차 편해지고 안전해지기도 하였으나,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추세가 급격히 진행되어버린 사회에서는 진작부터 의지를 발휘하여 자유롭게 사는 맛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앞서 핵심적 도구라고 하였던 형식논리에서, 두 발이 아니라, 한 발 빼기를 시도하였다. 아마도 “실재적 추상”이라는 말이 이러한 시도를 대변하는 말로 적합할 듯하다.

공익마케팅에서 유의해야 할 점들- 『로빈후드 마케팅』 서평

현재 공익관련 일들도 마케팅, 홍보, PR은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일반 기업에는 훨씬 못 미치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더 많이 팔기 위해 소비를 부추기지는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고 경쟁을 지양하는 공익단체에서조차 경쟁의 논리에 빠져 자칫 더 중요한 가치를 잊지 않아야 한다. 기업에서 하는 마케팅 방식이 모든 공익단체에 그대로 적용이 될 지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육식은 메탄을 발생시키고 연민의 대척점에 선다 ; 영화 《카우스피라시》 관람후기

공업화에 수반되는 환경오염은 기후 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그에 못지 않게 육식도 기후 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공장형 목장, 방목장, 가사농장이 모두 열대우림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재배한 유전자 조작 옥수수나 콩으로 만든 사료, 공유지의 목초지화, 메탄의 발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육식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직간접으로 살생을 피할 수 없다.

[왜 기후위기는 여태 해결이 안 되고 있는가 -CCC의 비밀을 찾아서] ③ 기후위기 해결에 심리학이 중요한 이유는? (上)

기후변화에 대한 행동을 촉구하려면 최선을 다해 양쪽 뇌 모두에 호소해야 한다. 먼저, 믿을 만한 출처에서 나온 정보임을 이성적 뇌가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한 데이터와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긴급성, 근접성, 사회적 의미, 이야기, 경험에서 나온 비유 등의 도구를 활용하여 감정적 뇌를 끌어들이고 자극하는 형태로 그 데이터를 변환해야 한다

살찐 소파에 앉은 인류 – 『의자의 배신』을 읽고

『의자의 배신』은 인류가 편리함을 위해 발전시킨 문명과 기술이 역설적으로 인류에게 해로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타고난 인간의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환경에서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할 시기이다.

변혁의 시작, 책 읽기!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고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간절히 바라기를 위해 두 손을 맞잡기보다는 독서를 위해 책을 붙잡으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것보다는 책을 읽고 텍스트로 저항해야 한다.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도 성서를 끊임없이 읽어 성서의 내용과 당시 성직자들의 행동을 비교하면서 그 유명한 95개 조의 의견서를 제출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종교개혁에는 독서가 큰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격리된 시간을 의미있게 견디는 법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며 군복무 기간의 ‘격리’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전역 이후 코로나19 상황이나 기후위기 시대의 전지구적 운명 또한 거대한 수용소와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과 에크하르트 톨레의 저서를 통해 인간의 자기 감금이라는 이 거대한 ‘수용 상황’에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지 말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마음챙김’을 통해 풀과 같은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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