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의 시작, 책 읽기!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고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간절히 바라기를 위해 두 손을 맞잡기보다는 독서를 위해 책을 붙잡으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것보다는 책을 읽고 텍스트로 저항해야 한다.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도 성서를 끊임없이 읽어 성서의 내용과 당시 성직자들의 행동을 비교하면서 그 유명한 95개 조의 의견서를 제출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종교개혁에는 독서가 큰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동일본 대지진 부흥의 모델, 미나마타의 모야이나오시 운동 – 공해도시에서 생태적 미래의 도시로

일본의 미나마타는 질소공장에서 방출된 수은중독으로 인한 공해병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과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지역운동가들이 주민들을 위한 단체들을 만들고 시장에 당선된 요시이 마사즈미와 환경공무원 요시모토의 활동으로 인해 지역은 서서히 변해갔다. 서로 갈등하고 싸우는 데 써왔던 에너지를 지역을 살리고 협력하여 지역특성에 맞는 도시로 거듭나고자 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미나마타 주민들의 자발적 지역운동 ‘모야이 나오시’와 마을운동 원칙과 특징 등에 대해서 살펴보며, 미나마타의 지역학을 동일본 대지진의 부흥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한다.

과정형으로서의 교육과 완성형으로서의 입시

현재의 한국교육은 배움과 성장이 중심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 상승을 위한 경쟁의 장이 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은 결국 삶을 위한 것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삶에서 끊임없이 좋은 삶에 대한 질문과 답을 하는 과정이다. 또한 관계성을 토대로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욕망의 창조와 생성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격리된 시간을 의미있게 견디는 법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며 군복무 기간의 ‘격리’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전역 이후 코로나19 상황이나 기후위기 시대의 전지구적 운명 또한 거대한 수용소와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과 에크하르트 톨레의 저서를 통해 인간의 자기 감금이라는 이 거대한 ‘수용 상황’에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지 말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마음챙김’을 통해 풀과 같은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아닐까?

[공동체의 철학] ② 흐름(Flux), 내발적 발전을 향하여

흐름(Flux)의 사유는 헤라클레토스의 ‘만물은 유전(流轉)한다’는 사상에서 가브리엘 타르드의 모방, 따라 하기, 유행 등의 원리로 나타났다. 정동의 흐름은 공동체를 강렬하게 만들어 그 일을 해낼 사람을 만들어낸다. 이를 주체성 생산이라고 부른다. 공동체의 정동의 흐름은 플랫폼자본주의의 포획을 넘어선 초과현실로서의 공동체의 전략을 의미한다.

[번역] 마이클 하트 「정동되는 힘」②

로렌 벌랜트와 바뤼흐 스피노자는 둘 다 우리의 도덕적‧정치적 기획이 반드시 정동의 지형 안에서 형성되고, 수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기획의 열쇠는 우리의 정동되는 힘을 약함이 아니라 강함으로 인식하는 데 있으며, 우리가 비주권적 주체임을 후회하지 않으면서 깨닫는 데 있다. 우리는 정동을 경유할 때에만 해방과 기쁨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글은 마이클 하트 「정동되는 힘」 번역본 중 두 번째 글이다.

기후위기시대, 문명전환의 전략과 불교적 해법찾기 – 조안나 메이시의 재연결작업(WTR)과 생명으로 돌아가기 ②

녹색불교운동은 사회변화(사회운동)와 자기변화(수행)를 동시에 실천하며, 자연과 생물의 권리, 미래세대권리 등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리가 지녀야할 가치와 태도를 깨닫는 것이다. 궁극에는 연결된 사회 속에서 자연과 타인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임을 깨닫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각성운동이다. 이 글은 ‘조안나 메이시의 재연결작업(WTR)과 생명으로 돌아가기’에 대한 두 번째 글이다.

부처님의 뜻과 지혜 : 생명존중에서 기후행동까지

개발과 발전과 성장이 좋다는 패러다임 속에 자연은 인간의 편리를 위한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자연이 곧 우리와 한몸 한생명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인간중심적으로 질주해온 공업(共業)의 과보가 오늘의 기후위기 상황이다. 궁극적으로 불교환경운동은 해탈의 운동이어야 한다. 개인의 업장을 풀어헤치는 해탈을 넘어서 우리 모두의 함께 받아야 하는 공업으로부터 해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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