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과 팬데믹

팬데믹을 둘러싼 주류 담론들은, 1) 국민국가의 경계선을 토대로 하는 주권국가 중심의 통제 전략, 2) 인간중심주의적 세계 이해, 3) 신체에 대한 수동화 및 개체화, 4) 도구적 합리성의 언어(자연에 대한 과학적 통제, 통계와 예측을 통한 수량화에의 집착)의 득세, 5) 팬데믹을 기준으로 한 시간성의 단절과 그에 따른 노스텔지아의 낭만화 등으로 요약된다. 정동의 정치학은 이러한 주류 지배 담론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술이 될 수 있으며,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집단적 신체의 힘을 증대시켜 슬픔의 연결망을 기쁨의 연결망으로 전환시킬 단초를 제시할 수 있다.

『짧은 지리학개론- 장소』 중 ‘젠트리피케이션 편’에 사례 덧붙이기

13년 5개월 동안 정의로운 노동과 페미니즘, 탈핵과 기후위기를 논하고 이와 관련된 실천을 도모했으며, 채식과 농사, 바느질 등 각종 실험들을 꾀했던 울산의 대안문화공간 품&페다고지. 성소수자들이, 채식인들이, 여성들이, 농부가 또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독립예술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며 다른 이들과 만나는 장소였고 일상을 나누는 삶의 공간이었으며 사회변화를 도모하는 정치적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 11월, 품&페다고지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나게 되었다.

교차성(intersectionality)과 돌봄, 그리고 영 케어러

‘돌봄자’도 교차성 개념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다. 돌봄 수행자들의 정체성이 단일하지 않기 때문에 돌봄은 수행자와 수혜자 모두의 자원, 재능, 권력 및 지위에 의존하며 매우 다양한 조건 속에서 수행된다. 돌봄자의 젠더, 가족적 위치와 역할, 연령, 계층 등이 어떻게 교차하며 돌봄을 수행하는지 탐구할 필요가 있다.

기후행동에서의 체제전환의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의 기후운동은 이제 무게 중심을 온실가스 감축 요구에서 체제전환을 위한 토대구축으로 옮길 때가 되었다. 이윤극대화와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를 축소하고, 청정에너지, 재생 농업, 공중보건 등 돌봄 경제와 더불어 먹거리, 주거, 에너지 등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경제로 전환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함께라면, 할 수 있어

지난 9월 25일 전국의 시민이 참여하는 집중 1인 시위가 진행되었다.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각각의 지역과 집 근처의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에서 “지금 당장, 기후정의”를 중심으로 각자가 원하는 문구를 포장박스 종이에 적어 참여하였다. 열 살 아이(그녀라고 부른다)와 함께 인생 처음으로 참가했던 좌충우돌 기후행동 도전기를 공개한다.

기독교 기후 결사 가능한가?

현재의 고탄소 소비사회를 구축한 원동력은 성장에 경도된 욕망이다. 그러므로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하여 임박한 기후재앙을 극복하기 위한 결정적인 과제는 성장에만 고정된 욕망의 전환을 이뤄내는 것이다. 욕망의 전환이란 주제는 철학과 종교의 본령이다. 이런 점에서 기후 위기, 기후재앙을 극복하는 기후 결사의 조직은 현재의 삶만이 아니라 미래에서도 영속 가능한 삶을 목표로 삼는 기독교 신앙의 절실한 과제가 된다.

화온의 명상이야기

‘착각하지 마라. 얼굴 찌푸리지도 마라. 이 숲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숲이 좋아 저마다 찾아든 뭇 생명들 모두, 평등하게 머물다 가는 객(客)이다. 나도 그 수 많은 손님들 중 하나일 뿐!’ 숲과 마찬가지로 나도 지구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이다. 여행지에서 묵었던 아름다운 숙소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머물다 떠나고 싶다.

이천식천과 비거니즘

‘이천식천(以天食天)’은 ‘하늘로써 하늘을 먹는다’는 의미이다. 모든 존재가 하늘이기에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하늘이 하늘을 먹는 행위라는 것이다. 모든 존재에 대한 감사함을 가지고 내 안에서 그 생명을 도로 살려내는 것이 이천식천이다.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비록 다른 생명을 먹더라도 그 목숨에 값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생명이 내 안에서 더 크게 살아나게 하는 것, 남의 목숨을 먹은 만큼 나의 삶이 더 거룩해져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지혜의 다르마, 불살생과 채식을 말하다

불교는 말한다. 모든 존재는 인드라망처럼 관계를 통해 존재하며, 고정된 실체없이 조건에 따라 끝없이 변화한다. 이러한 이치를 알게 되면 괴로움에 얽매이지 않으며, 서로 연결된 한몸, 한생이기에 자비의 마음으로 상생의 삶을 살게 된다. 필요한 만큼 소욕지족하는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한다. 나 한사람으로부터의 깊은 자각에서 시작하여 서로 소통과 연대, 다양한 실천을 통해 공동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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