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마음의 생태학

기후위기의 심각한 현실 앞에서 다시 희망을 말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동작이 필요할까? 그것은 삶의 가치를 찾고 뾰족한 이접의 마음을 극복하며 우리는 본래 상호의존적인 유한의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웃과 친구와 가족과 더불어 가난해질 때 기후위기 극복의 탈성장 사회는 실현가능해 질 것이다. 이는 전혀 새로운 무엇인가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소중’ 했던 것들을 바로 세우는 것이 될 것이다.

[왜 기후위기는 여태 해결이 안 되고 있는가 -CCC의 비밀을 찾아서] ④ 기후위기 해결에 심리학이 중요한 이유는? (下)

인간이 기후위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로, 진화심리학적 요인이나 기타 인간 내부의 심리적 요인들도 있으며, 사회적 침묵, 언어의 문제, 복잡하고 다면적 문제라는 기후변화 자체가 가진 문제들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비유나 이야기, 종교가 주는 교훈을 통해 여러 편향과 장애를 극복하며 기후문제를 알릴 수 있다.

기후행동에서의 체제전환의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의 기후운동은 이제 무게 중심을 온실가스 감축 요구에서 체제전환을 위한 토대구축으로 옮길 때가 되었다. 이윤극대화와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를 축소하고, 청정에너지, 재생 농업, 공중보건 등 돌봄 경제와 더불어 먹거리, 주거, 에너지 등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경제로 전환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기독교 기후 결사 가능한가?

현재의 고탄소 소비사회를 구축한 원동력은 성장에 경도된 욕망이다. 그러므로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하여 임박한 기후재앙을 극복하기 위한 결정적인 과제는 성장에만 고정된 욕망의 전환을 이뤄내는 것이다. 욕망의 전환이란 주제는 철학과 종교의 본령이다. 이런 점에서 기후 위기, 기후재앙을 극복하는 기후 결사의 조직은 현재의 삶만이 아니라 미래에서도 영속 가능한 삶을 목표로 삼는 기독교 신앙의 절실한 과제가 된다.

“인간의 멸종”, 일상이 되어버린 경고 – 『인간의 종말』을 읽고

지구는 더러워지고 또 더워지고 있고, 인간은 위험해 처했다. 넘쳐나는 경고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대멸종을 경고하는 최전선의 지성들은 경고를 남발하는 양치기 소년이 되었다. 이미 우리 주변엔 많은 경고와 대안들이 있다. 온전히 종이 위에 말이다. 대안을 현실로 바꾸는 건 결국 우리 인간의 몫이다.

[왜 기후위기는 여태 해결이 안 되고 있는가 -CCC의 비밀을 찾아서] ③ 기후위기 해결에 심리학이 중요한 이유는? (上)

기후변화에 대한 행동을 촉구하려면 최선을 다해 양쪽 뇌 모두에 호소해야 한다. 먼저, 믿을 만한 출처에서 나온 정보임을 이성적 뇌가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한 데이터와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긴급성, 근접성, 사회적 의미, 이야기, 경험에서 나온 비유 등의 도구를 활용하여 감정적 뇌를 끌어들이고 자극하는 형태로 그 데이터를 변환해야 한다

탄소중립 한다더니 기어중립하고 멈춰버린 정부와 국회

탄소중립 선언한 대통령은 졸속으로 탄소중립위원회 만들더니 탄소중립 불가능한 시나리오를 내놓고, 기후비상선언 결의한 국회는 국제기준에 턱없이 모자란 전혀 비상(?)하지 않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더이상 정부와 국회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기후위기와 불교기후결사

기후위기는 인간에 의해 기후재앙으로 일상화되고 사회적 약자들을 극단으로 내몰고 있다. 반면, 사회의 주류세력은 과학과 기술을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성장주의를 지속시키고 있다. 이에 불교는 기후위기로 인한 사회적 고(苦)의 해결을 위해 새롭게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 세상에 참여는 기후결사로 나타나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생태불교, 생명불교를 실천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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