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어떤 돌봄과 지금의 돌봄 – 기후 위기 속에서 『삼국유사』 「효선」 ‘대성이 전생과 이생의 부모에게 효도하다’ 읽어보기

돌봄은 자본주의 세계를 유지시켜 주면서도 홀대받고 있는 동시에 무척 부족하기도 한 노동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돌봄을 홀대받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노동으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자체가 곤란해질 수 있다. 돌이켜보면 지금과는 다르지만 다양한 돌봄들이 역사 속에서 명멸하였다. 역사 속의 돌봄에서 지금 미약한 돌봄을 창대하게 할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도, 세계를 곤란으로부터 구하는 노력의 하나가 될 것 같다.

기표적 얼굴성 – 청년은 어떤 얼굴을 가지는가?

들뢰즈, 가타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얼굴성’을 통해 얼굴과 연결된 권력 배치물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청년의 얼굴은 어떻게 생산되고 주어지는지 고민하며 청년으로서 내가 느끼는 ‘불안’을 바라본다. 끝으로 색다른 얼굴성의 생산은 어떻게 가능할까 상상해본다.

횡단하는 소통 – 『숲은 생각한다』를 읽고

숲에 사는 모든 것들은 서로 관계를 가지며 꽉 물린 톱니바퀴처럼 서로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아간다, 저자인 에두아르도 콘은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들 간의 소통도 모두 기호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을 중심으로 숲을 해석하면서 ‘기호’를 통해 비인간들과의 소통방법에 대해 좀 더 깊은 사고를 유도하고 있다.

부엔 비비르(buen vivir)를 만난 김에 피은(避隱)도 생각해 보자 – 기후 위기 속에서 『삼국유사』 「피은」‘영재가 도적을 만나다’ 읽어보기

부엔 비비르는, 자본주의・개발・성장을 성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느낌을 공유하는 태도라고 할 수도 있고, 성장을 당연시하는 생각・행동・관습을 성찰하는 다양한 태도들이 어우러질 수 있는 장(場)이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옛 안데스 사람들이 가졌었다는 ‘공동체 안에서 긴밀한 관계를 통해 이루는 충만한 삶’에 관한 ‘느낌들’에 기대어 생성된 것이다. 이런 ‘느낌들’은 고대의 다른 정치제에서도 공유되었던 것 같다.

[탈성장토론회 특집] ① 마그나카르타와 공통의 숲 – 『마그나카르타 선언』을 읽고

이 글은 2022년 12월 22일에 '탈성장 전환에서의 생태헌법정신'을 주제로 한 [탈성장 대토론회] 발제문으로 발표된 내용이다. 800년 전 제정된 “진짜” 마그나카르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축소되고 왜곡되기 전, 마그나카르타에는 모두의 자유를 위한 ‘공통권’을 담지하는 삼림헌장이 있었다.

[탈성장토론회 특집] ② ‘전자의 숲’에서도 마그나카르타 정신은 유효할까?

이 글은 2022년 12월 22일에 '탈성장 전환에서의 생태헌법정신'을 주제로 한 [탈성장 대토론회]에서 논평문으로 발표된 내용이다. ‘(대)도시는 어떤 숲일까?’ 오늘날 대다수의 인구가 살아가는 도시라는 생태적 환경에서는 어떠한 공통권을 추구할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몸됨의 연장선을 따라가다 – 『말, 살, 흙』을 읽고

윤석, 솔빈, 호찬은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 한 팀으로 만났다. 〈몸의 사회학〉 수업에서 신유물론, 횡단신체성, 생태/비인간을 주제로 글을 쓰고 모두와 함께 읽었다. 셋의 글은 노마의 “앓음-앎-아름다움”, 솔빈의 “반드시 주위를 둘러본다”, 호찬의 “마땅한 죽음은 존재하는가?”로 이어진다. 스테이시 앨러이모의 『말, 살, 흙』을 마중물 삼아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풀어낸 결과물을 이곳에서도 나눈다.

관용・성찰・소수자 됨과 우분투 – 기후 위기 속에서 『삼국유사』 「감통」 ‘선도산 성모가 불사를 좋아하다’ 읽어보기

서정주가 그의 시 「꽃밭의 독백 - 사소 단장」의 소재로 삼기도 하였던 『삼국유사』 「감통」 ‘선도산 성모가 불사를 좋아하다’를 읽을 때, 사람들은 대개 선도산 성모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그 이야기 속에는 지혜라는 비구니도 등장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앞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그는 어떤 행적을 남겼길래 그 글 속 그 위치에 자리하게 된 걸까?

친절함에 대한 진화론적 탐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를 읽고

인류가 지구상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연을 정복하는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친화력’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친화력이야말로 진화의 주원인이라는 것. 이 책에 따르면, 우리의 본래 마음은 친절함이 충만하기에 사랑과 화합의 공동체는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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