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한다더니 기어중립하고 멈춰버린 정부와 국회

탄소중립 선언한 대통령은 졸속으로 탄소중립위원회 만들더니 탄소중립 불가능한 시나리오를 내놓고, 기후비상선언 결의한 국회는 국제기준에 턱없이 모자란 전혀 비상(?)하지 않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더이상 정부와 국회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기후위기와 불교기후결사

기후위기는 인간에 의해 기후재앙으로 일상화되고 사회적 약자들을 극단으로 내몰고 있다. 반면, 사회의 주류세력은 과학과 기술을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성장주의를 지속시키고 있다. 이에 불교는 기후위기로 인한 사회적 고(苦)의 해결을 위해 새롭게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 세상에 참여는 기후결사로 나타나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생태불교, 생명불교를 실천해 가야 한다.

“마을의 활력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 갈등에 참여하기: ‘그들’을 알고, ‘우리’를 세력화하기

마을의 활력은 서로 다른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낼 때 생겨납니다. 흔히 좋은 결과라고 여기는 ‘통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중점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필요한 조건은 공동체입니다. 조직되지 않은 개별 주민의 의사는 반영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직화할 수 있는 공동체를 구축하고, 갈등에 참여해야 합니다.

도표와 수학: 수학에서의 지도 그리기

지도 그리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본질적인 것과 본질적이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오직 본질적인 것만을 전경으로 줌 인(zoom in)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수학에는 그런 예들이 많다. 특히 미적분은 고도로 자유로우면서도 고도로 조직된 도표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입구를 발견하기 위해 지난한 과정을 거쳤지만 이를 통해 수많은 출구들이 발명된다.

만다라를 만난 시간 -제2회 〈생태적낭독회〉 후기

이번 생태적낭독회에서 「플라스틱 만다라, 사죄와 축복의 생태예술」이라는 글을 함께 읽으면서, 저에게 플라스틱 만다라를 만드는 과정은 종교에서 말하는 기도와 같은 행위로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인생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삶의 나락으로 완전히 떨어져서 부서지거나 바닥을 짚는 경험으로 절망을 맛보게 하지만, 그런 순간 뒤에 오는 또 다른 시작이 어쩌면 십자가의 고통을 직면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여정처럼 우리 삶에서도 축복의 시작점이 아닐까요?

백신의 시간을 넘어, 생태적 뉴노멀을 준비하자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 BC (Before Corona)와 그 이후를 AD (After Disease)로 명명했고,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하며 불안하지만 새로운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는 논의를 해왔다. 신속한 백신접종으로 이러한 국면이 정리되는 이 시점에 팬데믹 이후 AD의 뉴노멀을 준비해야한다.

동일본 대지진 부흥의 모델, 미나마타의 모야이나오시 운동 – 공해도시에서 생태적 미래의 도시로

일본의 미나마타는 질소공장에서 방출된 수은중독으로 인한 공해병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과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지역운동가들이 주민들을 위한 단체들을 만들고 시장에 당선된 요시이 마사즈미와 환경공무원 요시모토의 활동으로 인해 지역은 서서히 변해갔다. 서로 갈등하고 싸우는 데 써왔던 에너지를 지역을 살리고 협력하여 지역특성에 맞는 도시로 거듭나고자 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미나마타 주민들의 자발적 지역운동 ‘모야이 나오시’와 마을운동 원칙과 특징 등에 대해서 살펴보며, 미나마타의 지역학을 동일본 대지진의 부흥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한다.

과정형으로서의 교육과 완성형으로서의 입시

현재의 한국교육은 배움과 성장이 중심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 상승을 위한 경쟁의 장이 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은 결국 삶을 위한 것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삶에서 끊임없이 좋은 삶에 대한 질문과 답을 하는 과정이다. 또한 관계성을 토대로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욕망의 창조와 생성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공동체의 철학] ② 흐름(Flux), 내발적 발전을 향하여

흐름(Flux)의 사유는 헤라클레토스의 ‘만물은 유전(流轉)한다’는 사상에서 가브리엘 타르드의 모방, 따라 하기, 유행 등의 원리로 나타났다. 정동의 흐름은 공동체를 강렬하게 만들어 그 일을 해낼 사람을 만들어낸다. 이를 주체성 생산이라고 부른다. 공동체의 정동의 흐름은 플랫폼자본주의의 포획을 넘어선 초과현실로서의 공동체의 전략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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