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굿의 ‘삼공본풀이’에서 발견한 대안적 공동체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작동기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곤 한다. 그럼에도 때로 자본주의 자체가 허약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일상에서부터 많은 틈을 보게 된다. 틈은 자본주의 작동기제를 벗어나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줄 수 있다. 제주도 굿의 ‘삼공본풀이’에서 그런 틈을 포착할 수 있는 여유의 바탕을 찾아본다.

공통적인 것에 대한 방어는 생명의 자율성에 대한 방어다!

오늘날의 생명 위기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생명관리권력을 작동시키는 장치로서의 자본 및 국가를 소환하지 않으면서 그에 맞설 수 있는 관점, 즉 저항하는 대안적 주체성과 그것의 생산 근거를 인식할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미셸 푸코, 조르조 아감벤,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가 이야기하는 ‘생명관리권력’, ‘삶권력’, 그리고 ‘주체성 생산’에 대해 살펴본다.

[보성댁 이야기] ⑯ 40년 만에 찾아간 소록도

젊은 시절, 보성댁은 남편 상덕씨의 일자리를 따라 소록도에서 살았었다. 11개월간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곳에서 지난 시간은 꿈 같았다. 소록도와 녹동 사이에 다리가 놓이고 사람들이 구경을 간다는 소식을 들은 딸과 사위는 보성댁을 모시고 소록도를 방문한다.

저부터 먼저 탈성장하겠습니다

세계 각국 정부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탄소배출을 급격하게 줄이겠다고 약속하면서 동시에 탄소배출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탄소배출이 실질적으로 감축되는 시점은 무한하게 지연되고 있다. 그 속에서 한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특히 물질조건과 행복을 동조화하는 수 많은 개인들이 어떻게 탈성장을 선택할 것인가?

서로에게서 자연에까지 존엄한 관계를 확대하기-『존엄하게 산다는 것』을 읽고

『존엄하게 산다는 것』을 통해 저자는 ‘존엄함이란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방법, 인간이 인간을 위해 책임을 지는 태도의 문제’라고 말한다. 인간은 개인의 의도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존엄이라는 것은 비단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타인뿐만 아니라 자연을 포함하여 우리가 맺고 있는 주위의 모든 관계로 확대되어야 한다.

[지금 여기 가까이] ⑬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여기 가까이] 시리즈는 단행본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삼인, 2017)의 내용을 나누어 연재하고 있다. ‘저성장을 넘어 탈성장을 바라보는 시대에,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여기, 가까이’에서 찾고자 하는 이야기다.

새만금 잼버리, 그 실패의 기원에 관한 메모

새만금 잼버리가 끝났다. 명백한 실패가 확인되었고, 책임 공방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책임 공방으로는 부족하다. 새만금 잼버리 실패의 기원은 적어도 30년 이상 묵은 우리 사회의 곤경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 새만금 잼버리는 다른 조건에 의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을 다루기 위해서는 새만금 잼버리를 둘러싼 30년의 경험을 복기해야 한다.

현세대가 미래세대의 미래를 빼앗고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현재세대들만의 민주주의이다. 현재의 민주주의와 정치시스템은 미래세대와 비인간존재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현재세대의 이익만으로 모든 결정을 할 뿐이다. 이제 우리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미래세대와 비인간존재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민주주의로 진보해야 한다.

‘재수없다’에 대한 색다른 해석 – 대안적 공동체 꾸리는 〈제석본풀이〉 ‘삼신할미’ 이야기

한국 무교의 노래 가운데 〈제석본풀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줄거리는 당금애기라는 여성의 험난한 인생 역정이어서, 이는 당금애기가 곧 한국의 어머니이며, 수 많은 여성들의 지킴이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이 노래 속에는 제석삼불도 등장한다. 이 글에서는 제석삼불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보고, 재수굿이라는 것도 살펴보고자 한다.

[나의 간디학교 일지] ➅ 함께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잘 모르는, 내가 살지 않던 삶에 연대한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외지인이라는 위치에 남지 않고 몇 발자국 더 걸어올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순간이 그저 스쳐 지나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며칠 뒤 이곳을 떠나고 나면, 내 일상은 지금 이 시간과 단절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학교 밖 타지에서의 배움에서 피어난 고민을 글로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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